
“박사님, 우리 아이를 죽인 범인은 도대체 누구인가요? 얼굴이라도 알면 멱살이라도 잡을 텐데….”
경찰서 조사실에서 아이의 유품인 스마트폰을 움켜쥐고 오열하던 어머니의 절규가 아직도 귓가에 선명하다. 세상을 등진 10대 소년의 몸에는 단 하나의 멍 자국도 없었다. 하지만 그의 스마트폰 안에는 수십 명의 익명 계정이 쏟아낸 조롱, 수치스러운 합성 사진, 그리고 끝없이 울려대는 단체 채팅방의 알림음이라는 ‘보이지 않는 흉기’들이 가득했다.
35년 경찰 현장에서 수많은 살인과 폭력 사건을 마주했지만, 이 얼굴 없는 살인자들의 잔혹한 만큼 내 등줄기를 서늘하게 만든 것은 없었다.
물리적인 폭력은 상처가 아물면 흉터라도 남지만, 익명의 장벽 뒤에서 벌어지는 이 폭력은 영혼을 갈가리 찢어놓고도 어떤 흔적조차 남기지 않는다. 가해자들은 가면을 쓰고 안전한 방구석에서 독화살을 쏘아대지만, 피해자는 세상의 모든 문이 닫힌 디지털 감옥에서 홀로 죽어간다.
기술의 진보는 우리를 초연결 사회로 이끌었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연결망은 가장 집요하고 잔인한 인권 유린의 사냥터가 되었다. 이것이 2026년 대한민국 치안 행정 전문가가 목격한 가장 비극적인 인권의 민낯이다.
“내가 던진 건 돌멩이 하나일 뿐이다”라는 비겁한 변명
이러한 폭력의 가장 무서운 점은 범죄의 책임이 ‘분산’된다는 데 있다. 수십, 수백 명이 한 명의 피해자를 향해 악성 댓글을 달고, 헛소문을 퍼 나르며, 이모티콘으로 조롱한다. 경찰에 검거된 가해자들은 한결같이 이렇게 항변한다. “남들이 다 하길래 나도 한 줄 썼을 뿐입니다.”, “진짜 죽을 줄은 몰랐어요.”
심리학에서는 이를 ‘도덕적 이탈(Moral Disengagement)’이라 부른다. 화면 너머의 피해자가 나와 똑같이 고통을 느끼고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채, 게임 속 몬스터를 사냥하듯 죄책감 없이 폭력을 휘두르는 것이다.
한 사람이 던진 조약돌은 가벼울지 몰라도, 수천 명이 던진 조약돌은 거대한 바위가 되어 한 인간의 숨통을 끊어놓는다. 피를 묻힌 주동자는 모호해지고 모두가 ‘군중’이라는 이름 뒤에 숨어버리는 이 완벽한 범죄 구조 속에서, 인간의 존엄성은 0과 1의 데이터로 조각나 바닥을 뒹군다.
도망칠 곳 없는 지옥, 그리고 침묵이라는 이름의 공범
과거의 괴롭힘은 적어도 하교를 하거나 퇴근을 하면 잠시나마 숨을 고를 ‘물리적 도피처’가 있었다. 하지만 스마트폰이 24시간 손에 쥐어진 현대 사회에서, 이 비극은 시공간의 제약을 뛰어넘는다. 피해자에게 가장 안전해야 할 침실조차 스마트폰 알림음과 함께 가장 끔찍한 폭력의 현장으로 돌변한다.
더욱 절망적인 것은 이 폭력의 무대를 둘러싼 ‘방관자’들이다. 누군가의 인격이 짓밟히는 과정을 실시간으로 지켜보면서도, 군중은 침묵한다. 오히려 자극적인 알고리즘에 이끌려 그 비극을 ‘조회수’라는 이름의 오락거리로 소비한다.
지난 칼럼들에서 언급했던 ‘공감의 외주화’가 여기서 다시 한번 고개를 든다. AI는 유해 콘텐츠를 필터링하려 애쓰지만, 인간은 타인의 고통에 개입하기를 꺼리며 렌즈와 액정 뒤로 비겁하게 숨어버린다. 침묵은 중립이 아니다. 폭력의 현장에서 방관은 가해자의 칼날을 더욱 날카롭게 벼려주는 가장 확실한 ‘공범’ 행위다.
이제 그 흉기를 내려놓고, 진짜 인간의 온도를 마주할 시간
얼굴 없는 살인자들이 지배하는 이 디지털 지옥을 부수는 것은 더 강력한 처벌법이나 고도화된 추적 기술만이 아니다. 그것만으로는 베인 상처를 꿰맬 수 없다. 진정한 해결책은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아날로그적인 가치, 바로 화면 너머의 대상이 ‘사람’임을 인식하는 뜨거운 인권 감수성에 있다.
누군가 단체 채팅방에서 조롱의 대상이 되었을 때 “이건 장난이 아니라 폭력이야”라고 단호하게 끊어내는 용기. 모두가 돌을 던질 때, 피해자에게 “네 잘못이 아니야, 내가 네 곁에 있어”라는 따뜻한 개인 메시지 한 통을 보내는 연대. 그 작은 ‘인간의 온도’가 거대한 디지털 폭력의 해일을 막아내는 가장 강력한 방패가 된다.
35년의 긴 공직 생활을 갈무리하며 나는 확신한다. 벼랑 끝에 선 생명을 구하는 것은 완벽한 시스템이 아니라, 기꺼이 손을 내미는 한 사람의 온기였다. 오늘 당신의 손가락이 키보드 위를 맴돌 때, 단 1초만 멈춰 서서 생각하라.
이 활자가 누군가의 심장에 꽂힐 비수가 될 것인가, 아니면 상처를 감싸 안을 따뜻한 붕대가 될 것인가. 당신이 그 흉기를 내려놓고 연대의 문장을 타이핑하는 순간, 무너져가던 우리의 인권은 비로소 디지털의 차가운 벽을 뚫고 다시 숨을 쉬기 시작할 것이다.
칼럼니스트

전준석 칼럼니스트는 경찰학 박사이자 35년간의 경찰 생활을 총경으로 마무리한 치안 행정 전문가다. 현재 한국인권성장진흥원 대표로서 우리 사회의 인권 감수성을 높이는 데 헌신하고 있다.
인사혁신처,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한국장애인고용공단 등 주요 기관에서 전문 강사로 활동하며 성인지감수성, 4대폭력 예방, 자살 예방 및 직장 내 장애인 인식 개선, 인권 예방, 리더십 코칭 등 폭넓은 주제로 사회적 가치를 전파하는 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범죄심리학’, ‘다시 태어나도 경찰’, ‘그대 사랑처럼, 그대 향기처럼’, ‘4월 어느 멋진 날에’ 등이 있다. 경찰관으로 35년간 근무하면서 많은 사람이 인권 침해를 당하는 것을 보고 문제가 있음을 몸소 깨달았다. 우리 국민이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차이를 인정하는 마음을 갖게 되면 차별이라는 것이 없어지고 인권이 성장할 것이다. 그런 생각에서 [삼시세끼 인권, 전준석 칼럼]을 연재 중이다.










